텍스트 생태계를 삼킨 AI 게이트키퍼, 그리고 흔들리는 챗GPT의 절대 우위
생성형 AI가 우리가 소비할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사실상의 ‘게이트 키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궁금한 소식을 포털이나 언론사 홈페이지 대신 챗GPT 같은 인공지능에 묻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꽤나 결정적인 변화다. 영국 공공정책연구소(IPPR)가 챗GPT, 구글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그리고 구글의 AI 요약 기능까지 네 가지 주요 AI 모델을 해부한 최근 보고서를 보면 이들이 정보를 유통하는 방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IPPR이 100개의 질문을 던져 얻어낸 2,500여 개의 링크를 뜯어보니 아주 흥미로운, 어쩌면 다소 섬뜩한 결과가 나왔다. 영국에서 뉴스 신뢰도 1위를 밥 먹듯 휩쓰는 BBC의 기사는 챗GPT와 제미나이의 답변에서 단 한 번도 인용되지 않았다. 그 빈자리는 가디언이 독식하다시피 했는데, 챗GPT 답변의 58%, 제미나이의 53%가 가디언의 기사로 채워졌다. AI가 기사의 질이나 신뢰도를 평가해 사용자에게 내놓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본과 계약 논리에 따라 정보를 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극단적인 쏠림 현상의 배경에는 ‘라이선스 계약’과 ‘크롤링 차단’이라는 물리적 장벽이 있다. 가디언은 오픈AI와 파트너십을 맺고 데이터를 내어주는 반면, BBC는 AI의 무단 데이터 수집을 거부하며 방어벽을 높이 쳤다. 결국 투명성이나 객관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AI마다 입맛에 맞게 편애하는 매체들이 따로 정해져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소수의 테크 기업들이 통제하는 편협한 알고리즘이 언론사들의 밥그릇마저 깨부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이 검색에 AI 개요 기능을 끼워 넣은 직후, 사용자가 실제 뉴스 사이트로 넘어가는 클릭률은 15%에서 8%로 반토막이 났다. 언론사들은 향후 3년 안에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트래픽이 43%나 증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IPPR은 정부가 개입해 언론사들의 ‘공동 라이선스 시장’을 깔아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AI가 도대체 어떤 매체의 기사를 얼마나 긁어와 답변을 버무렸는지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뉴스 영양 성분 표시제’를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도 꽤나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AI가 정보 생태계의 생명줄을 쥐락펴락할 만큼 비대한 권력을 갖게 된 지금, 이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절대적인 문지기들의 내부 역학 관계 역시 심상치 않게 요동치고 있다. 세상을 다 집어삼킬 것 같던 오픈AI의 독주 체제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분석업체 센서타워(Sensor Tower)의 연례 AI 보고서를 보면, 챗GPT의 시장 점유율은 절반이 붕괴된 46.4%로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불과 올 1월까지만 해도 50%를 거뜬히 넘기며 압도적인 지배력을 과시하던 위상이 몇 달 만에 깎여나간 셈이다.
물론 선거판으로 치자면 챗GPT는 여전히 압승을 거둘 1위 후보이긴 하다.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가 11억 명에 달해, 6억 6천만 명 수준인 제미나이를 아직은 넉넉하게 따돌리고 있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의 맹추격이 꽤나 매섭다. 구글 제미나이는 점유율을 27.7%까지 끌어올렸고, 앤스로픽의 클로드는 매일 백만 명의 새로운 유입을 빨아들이며 10.3%까지 파이를 키웠다. 그록(Grok)이나 메타 AI가 여전히 5%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전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성장세다.
특히 올 하반기에 애플의 새로운 시리(Siri)를 비롯한 일상적인 기기들에 제미나이가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면, 시장의 판도는 또 한 번 요동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든든한 뒷배였던 마이크로소프트마저 일부 기업용 도구에 가성비가 좋은 중국의 ‘딥시크(DeepSeek)’ 모델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식은 오픈AI의 뼈를 때리는 대목이다. 하반기 IPO(기업공개)라는 굵직한 산을 넘어야 하는 오픈AI 입장에서, 야금야금 갉아 먹히고 있는 시장 점유율은 향후 기업 가치를 평가받는 데 있어 꽤나 찜찜하고 무거운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